옥천군수(53)-송병일(宋秉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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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수(53)-송병일(宋秉一)
  • 전순표 시인, 전)국사편찬위원회 충북 부회장(사료조사위원)
  • 승인 2026.05.2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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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옥천군수 애민·구국정신·효성 본받자, 탐관오리 반면교사
우암 선생 직손 송병일 옥천군수 구읍 전통체험관 앞길 선정비


조선시대 근무한 역대 옥천군수들의 애민정신, 구국정신, 청백리, 효성 등의 훌륭한 발자취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그 당시 탐관오리로 백성을 괴롭혔던 군수들의 행적을 살펴보고 그를 반면교사로 삼아 건강한 옥천건설에 시금석이 되길 희망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조선 초기 군수인 옥주 지군사를 포함 약 275명이나 되는 옥천군수 중에서 사료가 있는 옥천 군수들의 발자취와 공과를 10여 년간 발굴하였습니다. 일부 개괄적으로 「옥천군수 관안」이란 논문도 일찍이 발표했습니다. ‘옥천향수신문’ 지면을 통해 1년여 동안 소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애독자분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과 옥천을 사랑하는 깊은 애향심으로 늘 옥천 향토역사 발굴‧연구에 매진하겠습니다. [필자주]


송시열 선생 직손 송병일 군수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인 송자(宋子)라 일컬어지는 옥천을 빛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있다. 이번 주는 우암 선생의 10세손인 송병일 옥천군수를 살펴본다. 송병일(宋秉一) 군수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1858년 1월에 충청좌도 옥천군수(沃川郡守)로 부임했다. 그는 송근수 대감의 당질이자 아들 송병서(宋秉瑞) 형조판서와 6촌 지간이다.

송병일 옥천군수 영세불망비는 옥천 구읍,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앞 도로변의 교동리비석군에 현재 남아 있다. 송병일 군수 선정비는 비의 높이(전고)가 147㎝, 비의 두께가 24㎝, 비의 폭이 80㎝이며 그 위에 두께 52㎝, 높이 36㎝의 이수(비갓)를 올린 비교적 큰 비석이다. 

앞면에 ‘郡守宋候秉一愛民善政碑(군수 송후병일 애민선정비)’라 새겼고 뒷면에는 ‘咸豐十一年辛酉七月 日【함풍십일년(1861년) 신유 7월 일】’이라 새겼다. 함풍(咸豐)은 중국 청나라 문종 때 연호다. 『승정원일기』 기록에 의하면 철종 1년(1850년) 6월 26일에 수릉 참봉에 제수되어 처음 관직에 진출하였다. 이후 1855년(철종 6년) 장악원 주부, 1856년 4월에 성균관 도서관장인 종6품 전적(典籍)에 이어 7월에 전라도 용담현령에 임명되었다. 


정립 선생, 공·사적 애민정신 표본

옥천에서는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의병에 참전하였고 62세에 대과 급제한 고암 정립 선생께서는 일찍이 인조 때 성균관 전적을 역임하였다. 진해현감 때는 임진왜란 전후 복구사업과 백성을 크게 보살핀 모범공직자인 목민관이다. 그는 팔순 전후하여 군자감정, 판사를 역임한 옥천 하동 정씨(河東鄭氏) 명문가 출신이다. 관직 은퇴 후에도 옥천 군민을 위해 조세 경감 등을 위한 상소 등을 올려 옥천 백성들에게 도움을 줬고 후학을 양성한 실천하는 성리학자였다. 


진천현감 송병일 포상, 승진

『철종실록 9권』 철종 8년(1857년) 12월 11일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충청좌도 암행어사 김익용과 황해도 암행어사 이유석을 불러서 접견하였다. 충청도 〈암행어사〉의 임금께 올린 보고서에 의하여 천안 군수 유장주 ~<중략>~ 옥천(沃川) 전 군수 유정환(兪廷煥), 성환의 전전 찰방 맹노술, 전전 병사 이인희, 충주 전전 영장 이승명 등은 죄주고 진천 현감 송병일(宋秉一)은 포장하여 승서하였다.”라고 기록하였다. 

유정환 옥천군수는 김옥균(金玉均) 선생 부인 기계유씨(杞溪俞氏) 외할아버지이며 후에 오위(五衛)에 부사과와 무주(茂朱) 부사를 역임하였다. 


박제완 옥천군수와 맞바꿔 부임 

송병일(宋秉一) 군수는 철종 8년(1857년) 진천현감을 거처 1858년 대흥군수에 이어서 철종 9년(1859년) 1월 5일 기사에서 “옥천군수 박제완(朴齊琬)과 대흥군수 송병일((宋秉一)을 맞바꿔 옥천군수로 부임하였다.”고 『철종실록』에 수록되었다.

철종 11년(1860년) 6월에 옥천군수에서 강원도 희양부사로 영전하였고 1867년(고종 4년) 종친부 전부(典簿)에서 정3품 사복시정에 승진하고 가자되었다.

조선 말엽에 대사헌과 도승지와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옥천 출신 송병서(宋秉瑞) 대감이 6촌이다. 송병서 판서는 옥천 구읍 육영수 생가에 살았던 ‘송 정승’인 좌의정 송근수(宋近洙) 대감의 아들이고 우암 송시열 선생의 8세손인 송흠락의 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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