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훈으로 옥천군수 역임 특히 침술 뛰어나 왕가 시침
박춘무(朴春茂) 옥천군수는 조선 중기 문신이며 임진왜란 때 청주성을 탈환한 의병장이며 침술의 대가인 한의학자이다.
박 군수는 1544년(중종 39년)에 청주에서 태어나 1611년(광해군 3년에) 67세 일기로 생을 마쳤다.
그는 임진왜란 때 청주 복대동에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으로 청주성 수복 등 공훈으로 1596년(선조 29년)에 옥천군수에 임명되었다.
사육신 박팽년 동생 후손
그의 본관은 순천 박씨(順天朴氏)이며 호는 화천당(花遷堂)이다. 단종 복위운동을 했던 사육신 박팽년 선생의 동생인 박인년(朴引年) 선생의 8세손이다. 아버지 박기정(朴箕精)의 넷째 아들이다. 박춘무 군수는 아들, 손자까지 3대 의병장을 배출한 충신 가문 사람이다.
조헌 의병장과 함께 이지함 문인
금강 이북의 호서좌의대장 박춘무 의병장은 ‘토정비결’ 책을 지은 토정 이지함(李之函) 선생의 문인(門人)이다.
청주 읍성 탈환의 주역으로 널리 알려진 금강 이남의 호서우의대장인 옥천의 중봉 조헌(趙憲) 의병장과 함께 이조판서를 역임한 이산보, 송제민 선생과 학문을 함께 배운 토정비결을 지은 이지함 선생의 제자이다.
침술 뛰어나 의주 선조 왕족 시침
박춘무 의병장은 종6품 찰방을 거쳐 임진왜란 때 청주에서 창의하여 의병을 일으켜 조헌 선생과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탈환하는 등 호서 지방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그뿐만 아니라 박춘무 의병장은 한의학과 침술학에 대가인 명의(名醫)로 의주로 피난한 왕과 왕자를 비롯한 왕가에 불려 가 시침을 하는 등 뛰어난 의술을 펼쳤다. 당대에 명의 허준(許浚) 선생에 버금가는 침구술에 대가이다.
임진란 중 옥천군수 역임, 참찬에 추증
임진왜란 중인 1596년(선조 29년)에 옥천군수를 지냈고, 지방관으로 1597년 정유재란 때는 임천군수, 인천부사를 역임하고, 이듬해는 부평부사 등을 지냈다. 후에 종2품 가선대부에 올랐고, 돌아가신 후에 정2품 우참찬(參贊)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민양(愍襄)공이다. 저서로는 《화천당집》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