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수(38)-김제갑(金悌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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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수(38)-김제갑(金悌甲)
  • 전순표 시인, 국사편찬위원회 충북 부회장(사료조사위원)
  • 승인 2025.10.23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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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곳서 충신, 효자, 열녀 났다!
김 목사, 차남 순국, 부인까지 자결

 

원주시청 김시백(왼쪽), 이씨부인(오른쪽) 동상
원주시청 김시백(왼쪽), 이씨부인(오른쪽) 동상

 

다음은 강원도 원주(原州) 충렬사에 문숙공 김제갑 충렬비에 새겨진 글이다. 

“신하는 충성으로 죽고 부인은 죽어 정절을 지켰으며 아들은 죽어 효도를 다 하였으니 여기 만고에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을 남겼도다.”라고 새겼다.

그리고 충북 괴산 화암서원은 유림에 의해 1622년(광해군 14년)에 세웠다. 처음에 이황, 이문건, 노수신과 김제갑(金悌甲) 원주목사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유림에 의해 위패가 모셔졌다.

김제갑 옥천군수는 1553년(명종 8년) 29세 때 과거에 합격, 홍문관 정자를 시작으로 병조좌랑, 1562년 옥천군수에 임명되었다.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1582년 황해도 관찰사, 1583년 좌승지, 대사간, 충청도 관찰사 등을 지내다가 임진란 직전인 1591년(선조 25년)에 원주목사로 부임했다. 


충주 신립 장군 지원해, 원주 텅텅 벼

김제갑이 원주목사에 부임한 후 아홉 달 지난 1592년 8월 24일, 모리길성(毛利吉成)이 이끄는 3천여 왜군이 원주로 쳐들어왔다. 그 때 강원도 원주목에는 군사가 거의 없었다. 왜군은 대구-경주-상주-새재를 거쳐 4월 27일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申砬) 장군과 전투를 치를 때 모두 지원군으로 보냈던 탓이다. 하지만 병사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아직 왜적들의 침탈이 없었으므로 그런대로 원주는 평온했다. 한편 옥천은 8월 20일 북상하는 왜군에게 점령당했다.

그러나 서울이 함락돼도 조선은 항복치 않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조선 백성이 들고 일어나 충청도 옥천에서 조헌, 청주 박춘무, 문경 이봉 선생 등 전국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모리길성에게 강원감사에 임명했다. 그래서 모리길성은 강원도의 북부 안변에서 동해안을 타고 남하, 삼척을 점령하고 강원도 남부와 정선과 영월을 침탈했다. 이후 경상도 영주·봉화로 갔다가 다시 합세, 죽령을 넘어 원주로 달려들었다. 군사가 없었으므로 김제갑은 원주 백성들을 이끌고 영원산성으로 피난하니 왜군들이 몰려와 영원산성을 포위했다.


영원산성 전투 순국, 차남, 부인까지

영원상선 전투가 하루 종일 이어진 끝에 원주 관군은 화살까지 떨어지는 지경이 되었다. 군관 오항(吳杭)이 김제갑을 등에 업고 피신하려 했다. 그러나 김제갑은 돌처럼 굳게 앉은 채 오항에게 말했다. "내가 평생 동안 나라의 큰 은혜를 입으며 살아왔는데 지금 이 상황에 어찌 도망을 칠 수 있겠느냐. 다만 젊은 너희들은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구나.“

김제갑 목사는 화살로 왜군에게 쏘며 적을 쓰러트리다가 왜군의 총을 맞고 쓰러지고 이어 칼로 베어져 전사했다. 그러자 그의 차남 김시백은 "너는 이것을 가지고 돌아가 오늘 소식을 전하여라. 나는 부모님께서 이곳에서 돌아가셨으니 혼자 떠날 수가 없다." 하지만 부모의 시신을 거두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던 그도 끝내는 왜적의 창칼 아래 죽고 말았다. 또 김제갑 목사 부인 전주 이씨(全州李氏)도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정절을 지켜 자결하였다.


한곳에서 충신, 효자, 열녀 남

이후 선조 왕은 한 곳에서 충효열 즉 충신, 효자, 열녀가 나왔다고 하여 “일우고성 만고삼강(一隅古城 萬古三剛, 한 모퉁이 외로운 城에서 三剛삼강을 펼치었도다)”이란 8자 임금의 글씨를 내려 문 위에 달게 하였다.

신하는 충성에 죽고, 아들은 효성에 죽고, 부인은 정절에 죽어 만고에 삼강을 심었도다.
그 후 1670년(현종 11년)에 충숙공 원충갑과 증영의정 김제갑(金悌甲) 그리고 원호와 함께 위패가 모셔진 강원도 원주 사우에 충렬(忠烈)이란 편액이 사액되었다, 1711년(숙종 37년)에 문숙(文肅)이란 시호와 함께 영의정에 다시 추증되었다. 원주의 충렬사에 배향되었다가 서원철폐령으로 사액 받은 <충렬사> 현판은 괴산 충민사 경내에 보관하고 있다. 괴산 충민사와 괴산 화암서원(華巖書院), 괴산 능촌리 제각에서 매년 제향을 올려진다.

전사한 차남 김시백도 후에 호조참의에 증직되었고 장남 김시헌의 관직은 도승지에 이르렀다. 괴산 안동김씨 명문가 출신, 김제갑 목사는 진주대첩 명장 김시민(金時敏) 장군과 임진왜란 때 괴산 선봉장이었던 김시약 창성부사의 숙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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