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없이 못 버티는 세상 어찌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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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없이 못 버티는 세상 어찌 살라고...
  • 장운철 기자
  • 승인 2024.08.2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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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 씨(1900-1943)는 일제강점기(1910-1945) 때 활동했던 소설가다.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 다음 해인 1920년 단편소설 ‘희생화’로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3.1운동 이후 우리 민족에 대한 탄압과 투옥은 더욱 심했다. 소위 출구 없는 사회다. 우리 백성은 탄식과 눈물 그리고 분노의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정말 술 없이는 하루로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세상이다. 이때 문학은 어떠했나? 당시 시대를 어떻게 그렸나? 억울함, 분노, 절망 등의 내용으로 가득하지 않았을까. 그러한 표현은 가능하기나 했을까? 이런 궁금함이 많아졌다. 과연 어떠했을까? 


현진건 씨의 <술 권하는 사회> 외 3편을 살펴보자. 이 작품들은 중고등학교 권장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술 취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던 우리네 사회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술 권하는 사회


1921년 발표된 작품이다. 내용은 이렇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있다. 남편은 똑똑하다. 그는 결혼한 이후 곧바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고 만다. 그때부터 아내는 독수공방이다. 삯바느질로 입에 풀칠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남편이 ‘부자 되는 방망이’를 만들어 올 것이라 기대한다. 그것이 어려운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7-8년 만에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다. 아내는 뛸 듯이 기뻤다. 이제 모든 고생은 끝이라 여겼다.  


남편은 독서와 글쓰기로 날들을 보냈다. 아내는 그것이 ‘부자 되는 방망이’ 만드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남편은 한숨을 깊이 내뱉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그때부터 밤늦게 술에 취해 돌아오는 일이 잦았다. 갈수록 심했다. 자정을 넘기는 일도 다반사다.


참다못한 아내가 한 번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한다. 


아내: 누가 술을 권하노?
남편: 누가? 이 사회가...
아내는 ‘사회’라는 말이 어느 술집 이름인 줄로 알았다. 계속해서 남편의 한탄이 이어졌다.
남편: 민족과 사회를 위해 모임을 가지려고 하면, 명예와 지위 권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다. 조선 사람으로 성립된 사회가 한탄스럽다.


그리고 남편의 한 마디로 소설은 마쳐진다.


“이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오늘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역시 술 권하는 일이 많다. 취업을 했으면 좋아서 술을 권하고, 안 되었으면 짜증난다고 술 권한다. 사업이 잘 되면 즐겁다고 술을 권하고, 하는 일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답답하다고 술을 또한 권한다. 날씨가 좋으면 좋다고 술을 권하고, 날이 꾸물거리면 그렇다고 역시 술을 권한다. 친구를 만나면 만났기 때문이라며 술잔을 부딪치고 친구가 없으면 쓸쓸하다며 또 술잔을 비운다. 약 100년 전, 현진건 씨 당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국가 사회의 답답함으로 주로 술을 권했고 지금은 자신의 삶이 갑갑해서 술을 찾는다는 정도일 뿐.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일 저런 일로 술 권하는 일은 차고 넘친다. 


이 작품은 술 없이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은 사회 속에서 꼭 술에 취해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반대로 슬프고 괴로울 때 우리는 술 취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을까. 


약 100년 전의 상황으로 다시 한 번 돌아가보자. 역시 일제 강점기 때다. 우리는 훌륭한 독립운동가들 알고 있다.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선배들이다.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 장군, 3.1 운동의 대표자 유관순 열사(예전에 우리는 ‘누나’라고 부르곤 했다), 독립운동가 33인, 그리고 이름도 빛도 없이 독립을 위해 활동했던 많은 이들이 있다. 이들도 술 권하는 사회 속에 살았다. 싸워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현실이지만, 그들은 일어나 달려갔다. 술, 그 이상을 바라보며 뛰어갔다.  


올곧게, 정직하게, 거룩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네 주변에 적지 않다. 그들도 술이라도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보이는 세상 속에서 우리와 동일하게 사는 이들이다. 

 


** B사감과 러브레터


1925년 작품이다. 사랑 이야기다. 내용을 살펴보자.


여학교 기숙사가 배경이다. 이곳에 B사감이 있다. 40이 가까운 노처녀다. 그는 ‘연애=마귀 짓’이라는 굳건한 철학을 갖고 있다. 따라서 기숙사에 배달되어 온 편지를 철저히 검열한다. 모두 뜯어서 직접 읽어본다. 연애편지가 발견되면 해당 여학생을 부른다. 누구냐? 언제 만났느냐? 만나서 무엇을 했느냐? 등의 사생활에 깊이 관여한다. 해당 여학생을 죄인 취급하며, 연애를 중단하지 않으면 퇴학시키겠다는 협박도 한다. B사감은 그 여학생을 위해 기도를 하기도 한다. 사탄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말이다. 기숙사에 가족이 찾아와도 남자면 들어올 수가 없다. 매우 철저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발생됐다. 새벽 1시경만 되면 누군가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잠에서 깬 여학생1은 처음에는 별소리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매일 반복되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 소리는 남자와 여자의 대화처럼 들렸다. 우리 기숙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학생1은 친구2와 3을 깨워 그 소리를 추적하기로 했다. 조심조심 그 소리를 따라 복도 끝까지 기어갔다. 그런데 그 소리의 발생지는 바로 B사감방이었다. 무슨 일일까? 살짝 문을 열어보았다. B사감은 혼자 탁자에 앉아 있었다. 주변에 여러 장의 편지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기숙사 여학생들에게 온 편지들이었다. B사감은 혼자서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를 번갈아 내며 감정을 한껏 드러내며 편지를 혼자 읽고 있었다.


“오, 태훈씨!”
“오, 경숙씨. 그대에게 바친 나의 타는 듯한 마음을 이제야 알겠습니까?”
“그만 놓아요. 키스가 너무 길지 않나요. 행여 남들이 보면...”


여학생1,2,3은 깜짝 놀랬다. 믿기지 않았다. 숨죽이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에그머니, 저게 왠일이야”
“미쳤나 봐, 밤중에 혼자 일어나서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에고.. 불쌍해”


흑흑...
여학생 3의 눈물 소리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일제강점기 때 이런 위트와 사랑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 먼저 놀라웠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어떤 상황, 어떤 형편에서도 영원히 인간 삶의 중심인 모양이다.  


재미있는 말이 있다. 


잘난 남자와 잘난 여자가 연애를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흔히 ‘잘 어울린다’고 한다. 그럼, 못난 남자와 잘난 여자가 연애하면 어떤가? ‘남자가 능력 있나 봐’라고 한다. 반대로 잘난 남자와 못난 여자가 연애하면 ‘여자가 돈이 많나 봐’라고 한다. 마지막 못난 남자와 못난 여자가 연애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을 보이는가? ‘둘이 정말 사랑하나 봐’라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아내(남편)를 정말 사랑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혹시 못난...


사랑 때문에 술 권하는 일도 많다. 술 권하는 사회, 술 취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사회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 운수 좋은 날(1924)


김 첨지는 인력거를 끌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고 있다. 그날따라 아내는 일을 하루 쉬라고 권했다. 아내의 몸이 많이 아프기 때문이다. 아내의 권유를 듣지 않고 ‘일찍 들어오겠다’며 김 첨지는 일하러 나갔다. 그날따라 운이 좋아 손님이 많았다. 비싼 손님도 여럿 탔다. 집 근처를 지나가기도 했다. 그때 하루 쉬라고 했던 아내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힐끗 집을 쳐다보았다. 3살배기 아들 개똥이 울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날따라 손님 내려주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손님을 또 태우는 일도 연속이었다. 일찍 들어가려고 했지만 결국 늦은 밤시간이 되었다. 그날따라 친한 친구를 만나 술을 먹게 되었다. 김 첨지가 오랜만에 한 턱을 냈다. 그래도 지갑이 두둑했다.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포장했다. 오랜만에 포식을 시켜줄 요량이다. 


아내는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김 첨지는 자신이 귀가했다는 뜻으로 발로 아내를 툭~ 찼다.

반응이 없다. 한 번 더 찼다. 마찬가지다.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년아, 왜 대답이 없니..”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설렁탕 사다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한, 왜 먹지를 못하니...”


아빠의 울음 섞인 소리에 엄마 품에서 울다 지쳐 쓰러진 개똥이가 다시 깨어 울었다.
‘괴상하게 운수가 좋더니먼...’


김 첨지의 독백으로 소설이 접힌다. 오늘 우리도 ‘운수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한다. ‘금수저’라는 말도 그중 하나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권력을 업고 사는 사람을 말한다. 하는 일마다 일이 잘된다는 사람도 주변에서 간혹 만난다. 또한 ‘운수 좋은 날’도 있다. 그날따라 일이 잘 풀린다고 하는 날이다. 


질문 하나 던져보겠다. 


‘운수 좋은 날, 재수 좋은 날, 우연히 잘 되는 날’이라는 개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반대로 ‘운수 없는 날, 재수에 옴 붙은 날, 뭘 해도 안 되는 날’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런 날이 있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물론 ‘운수 좋은 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도록 권하기도 한다. 무엇인가 축하받는 자리에서 ‘제가 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라고 말이다. 이는 겸손의 표현이다. 


우리네 인생을 운수, 재수 등의 용어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할까? 운수 좋은 날에 의지하면 자칫 방탕하거나 교만해질 수 있다. 반대로 운수 없는 인생이라 생각되면 좌절하기 쉽다. 그러면 술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진정으로 운수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참으로 운수 좋은 날이 있다면, 그것은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날이다.


재수가 없는 날이라고 술 권하고, 재수가 좋은 날이라고 술잔을 채우려는 세상이다. 술 권하는 사회, 술 없이는 버틸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 속을 뚫고 전진하는 정말로 운수 좋은 사람은 가족을 향해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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