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더께 속에 스며있는 인연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것은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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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더께 속에 스며있는 인연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것은 인연이다
  • 배정옥 수필가
  • 승인 2024.05.09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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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수억 수천 명의 인구중에 가족이라는 깊고 깊은 인연의 끈으로 만나졌다는 것은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벌써 입춘도 저만치 물러가고 문밖에 있던 봄이 잰걸음으로 다 와 있다. 햇살이 쏟아지는 한낮에 거친 눈보라 속을 건너온 홍매화가 벙글어 있던 꽃망울을 활짝 피웠다.

붉은 꽃잎이 햇살에 더욱더 반짝거린다. 살랑이는 살 바람에 살기 어린 꽃샘바람도 경계를 허물고 팽팽해진 땅으로 내려앉았다. 나뭇가지마다 푸른빛이 움트고 있다. 한 계절이 지나면 또 한 계절이 오듯 자연의 이치다. 그 자연 속에 사람도 자연과 닮아있다. 나무들도 가지를 섞어 서로 비비며 살 듯 인간도 살며 살아오며 겪었을 희로애락이 녹아들어 여리 여릿한 마음이 자져지고 때론 부서지기도 하며 성숙해 가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나니 핸드폰에 ‘홈쇼핑 직배송 13시~15시 배송예정’ 문자가 들어 왔다.

며칠 전 무심코 TV채널을 돌렸다. 스치는 채널 홈쇼핑에서 말로만 듣던 제주도의 특허 오메기떡을 판매하고 있었다. 작년 여름 남편의 회갑 생일에 딸 사위와 제주도 여행 갔을 때 음식점에서 일 인당 한 개씩 맛본 터였다. 순간 큰 형님이 생각이 났다.

지난겨울 직장에서 임원 회의가 음성에서 있었다. 일정을 다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곳이 수경 쌈채농장이었다. 물위에서 갖가지 쌈채들과 먹음직스런 딸기가 소담스럽고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그 딸기와 쌈채를 한 상자씩 샀다. 집 앞에 도착해 들어오지도 않고 가까이 사시는 큰 형님께 나누어 드렸다.

형님께서는 내가 준 값어치보다 더 비싼 유정란을 한 판도 더 보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좀 더 보내드렸다. 잠시 후 돌아온 아들 손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게장과 굴비가 한 꾸러미가 들려있었다. 참으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값어치로 따지면 안 돼지만 너무도 큰 차고도 넘치는 형님의 마음을 알 수가 있었다. “형님! 냉장고 다 비우셨어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저희 다 주시면 어떡해요?” 나는 고맙고 죄송스런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다. 형님께서는 별 걱정을 다 한다며, 하시는 말씀이 “아니 걱정하지 말고 맛있게 먹으면 돼”
그날 저녁 밥상은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았다. 형님의 진심어린 마음을 먹었기에 내 생에 가장 맛있는 저녁으로 기억될 것이다.

시누이이자 큰 형님을 만난 것은 35년 전이다. 농사가 주업이신 부모님의 맏딸로 태어나신 큰 형님, 7남매 맏딸로서 배려와 양보를 미덕으로 삼고 살았을 녹록치 않았던 삶이 휑한 찬바람으로 밀려온다. 결혼 전에는 어린 동생들을 위해 일찍이 도시로 나아가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서는 부모님의 자리를 대신해야 하는 큰 형님의 자리가 크고도 버거웠을 것이다. 한 때는 형제들과의 갈등과 힘든 시간이 있었다. 이미 소우주가 되어 서로서로를 신뢰하지도 않았고, 옅은 속단을 남발 하게 했던 우를 범하여 서로 상처를 주고 받았던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들의 삶도 가을을 지나고 머지 않아 흰 눈이 하얗게 내리리라.

성철스님의 말씀 중에 ‘중상과 모략 등 온갖 수단으로 나를 괴롭히고 헐뜯고 괄시하는 사람보다 더 큰 은인은 없으니 그 은혜를 갚으려 해도 다 갚기 어렵거늘, 하물며 원한을 깊이 깨닫고, 나는 그 사람을 더욱더 존경하며 도와야 한다’라는 말씀에 한때는 이해를 못 하고 반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꽃게장과 굴비를 냉장고에 넣어 두고 아끼며 조금씩 꺼내 먹을 때마다 큰 형님이 고맙기만 하다. 어떻게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차에 오메기떡이 눈에 들어왔다. 귀한 사람에게 귀한 음식을 대접 하는 것이 귀이 여기는 것이다. 맛있게 드실 형님을 생각하니 매화꽇 향기가 물씬 밀려와 코끝을 스친다.

사람들의 마음도 형태가 있어서 구석구석 비워두지 않고 탐미할수 있고 더듬어 볼수 있는 마음의 눈이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세밀하게 더듬어 그 진실을 알게 된다면 어설픈 오해로 서로가 서로에세 상처를 일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살면서 인연의 소중함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마음을 나누며 살고싶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물의 높낮이를 없애고 평탄한 수면을 만들려 함이다. 강물이, 세월이, 시간이 흐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때론 이 태풍이 움켜쥔 바람과 해일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수면이 평탄해지면 흐름도 파동도 멈춘다.

그래서 사람도 자연도 같은 눈높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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