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가문 인천이씨 임진란 때 의병장 활약
상태바
충의가문 인천이씨 임진란 때 의병장 활약
  • 전순표 옥천향토전시관장
  • 승인 2024.03.21 0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진란 이문범·이충범 의병장·이시립, 정묘호란 이운길 의병 
 
조선시대 옥천(현 영동) 양산의 명문가인 인천 이씨(仁川李氏) 가문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등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용감히 나서 나라를 지킨 솔선수범한 가문이다. 그 당시 칠순 노구의 이충범 의병장과 더욱 팔순 노구에도 일본군에 대항하다 순국한 이문범 의병장 등 많은 의병을 배출한 우리 옥천의 충의 가문이다.

이시립 부친 이충범 의병장 도와 참전

이운길 찰방의 아버지 이시립은 이충범 의병장의 아들로 1579년(선조 12년) 식년시에 진사 3등으로 합격, 관직에 올라 시정(寺正)을 지냈다. 이시립은 임진왜란 때 옥천군 동이 평산리 쌍봉서원 도총소를 두고 350명의 유림과 백성 등이 아버지 이충범 의병장이 의병을 일으켰을 때 참전했다. 이때 당서기를 맡아 옥천과 영동 출신 의병들과 함께 큰 활약을 하였다. 특히 이충범 의병은 옥천 등 충청도 동남부는 물론 추풍령을 넘어 경상도 김천과 구미 낙동강까지 진출하여 출몰하는 일본군과 싸워 7전 7승을 하며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충범 선생은 1520년(중종 15년)~1598년(선조 31년) 78세에 생을 마친 임진왜란 때 충청도 의병장의 한 분이다. 본관은 인천 이씨이며 자는 덕린(德隣)이고 호는 동천(東川)이며 금강 상류인 옥천군(현재 영동군) 양내면(양산면) 원당리에서 태어났다. 조선 초기 대사성을 지낸 이거경 손자이며 아버지는 이원량(李元良)이며 어머니는 함창김씨로 김인손의 딸이다.

옥천군(현재 영동) 양산 자풍서당에서 공부한 이충범 1552년(명종 7)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560년 성환찰방과 1566년에 남해현감, 그 뒤 기장현감을 거쳐 성균관 전적이 되었고, 이어 경상도사, 형조좌랑, 문천군수, 영서찰방, 장단도호부사, 봉상시정 등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충범 선생은 아들 이시립과 함께 옥천군(현재 영동) 양산에서 금산에 있는 조헌(趙憲) 의병장의 의병 진영으로 가던 중 왜군을 만나자, 백병전으로 많은 왜군을 참살했다. 그 뒤 10월에 옥천군 동이 쌍봉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켜 임진왜란 때 큰 군공을 세웠다. 이충범 의병장은 후에 군자정책(軍資正策) 선무2등공신으로 녹훈되었다. 사후에 예조참의로 증직되었고 저서는 『동천유고)』가 있다.
 

이문범 의병장 천내강전투 아들과 순국
 
한편 그의 형인 이문범(李文範) 의병장은 임진왜란 때 팔순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옥천 양산에서 의병을 이끌고 조헌 의병에 합류하려고 금산을 향해 갔다. 그리고 양산과 금산의 경계지인 금산 제원면 금강 상류 천내강 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아들과 함께 순국하였다. 후에 이문범 의병장은 사도시정, 아들은 봉직랑에 각각 추증되었다.

조선시대 옥천군(현재 영동) 양산지방인 양내면 이시립은 아버지 이충범 의병장을 이어서 1636년(인조 14년)에 자풍서당(資風書堂)을 중수하고 상량문을 짓고 당헌 「재중약조」를 등 자풍서당을 일신하고 운영체계를 구체화하였다.

이운길·정립 처음 「관성사마안」 만들어

이운길(李雲吉, 1596~1654년)은 인천 이씨(仁川李氏)이며 이충범 의병의 손자로 사계 김장생 선생의 문인이다. 그는 고암 정립 선생과 함께 1627년(인조 5년)에 옥천 출신으로 조선 개국 이래로 17세기 초까지 대과와 소과 과거시험에 합격한 명부인 「관성사마안」을 처음 필사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운길 선생은 인조 때 음사로 벼슬을 하였고 후금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침략하며 정묘호란을 일으키자, 스승 김장생 선생을 도와 군량미를 거두었다. 그 후 사계 김장생 선생의 천거로 경안도(慶安道) 찰방을 지냈다. 

이충범, 이시립, 이운길 3대 자풍서당 일신

자풍서당은 17세기 초에 또다시 규모와 위상을 일신했고 이운길 찰방께서 17세기 전반 자풍서당의 전성기를 이끌었다.「송정집에는 “1639년(인조 17년) 서인의 문제 제기로 삼계서원에 추향된 조헌 선생의 위패를 다른 곳에 옮기는 일에 이운길 역시 부친 이시립과 함께 반대하며 통분했다”고 기록하였다. 이후 인쳔 이씨(仁川李氏)는 이운길 선생의 아들 이석형과 이석복, 손자 이기인, 증손자 이광도까지 대대로 자풍서당에서 공부한 대표적 가문이다.

한편 옥천 이원면 강청리 삼계서원(三溪書院)은 정립, 이시립, 박정로 등 남인계 인물과 곽현, 송갑조 등 서인계 인물들이 주동이 되어 중건되어 오다가 인근 옥천 이원면 이원리(구장터)에 창주서원(滄洲書院)이 건립되어서 조헌 의병장 등 서인계 인물의 위패를 모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