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아리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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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아리랑(3)
  • 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 승인 2019.06.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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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이웃 영동 아리랑을 통해 본 근대 세태
옥천아리랑은 1960년 이전에 불려졌다면 영동아리랑의 발생 시기는 경술국치 이후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잃고 총독부에 의해 탄압받고 빈곤했던 그 당시 우리 농촌의 일반적 현실이 영동 읍내의 그 당시 세태를 반영하여 직설적이며 한탄조의 아리랑이다.
옥천아리랑은 변형된 4연으로 구성된 데 비해 영동아리랑은 1개 연이 준 3연으로 이루어졌다. 각 연마다 끝부분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란 여흥(후렴)구 붙인 형식은 옥천아리랑과 같은 형식을 보인다. 대개 후렴은 각 연마다 선소리꾼의 그 연 노래가 끝나면 다 함께 불러서 합창을 통해 흥과 분위기를 띄웠다.

△일제 때 지도층의 주색잡기 등을
민초들의 직설적 비판조의 아리랑

영동아리랑의 줄거리 내용은 대한제국이 멸망한 경술국치 한일합병 이후 일제 강점기 초기인 국권상실기에 지방의 부자들과 유지들은 흥청망청 부어라 마셔라하며 날을 세워 술과 기생놀음 주색잡기에 빠진 세태가 가사의 주류를 이룬다. 이 같은 세태를 영동아리랑 가사에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부자와 더 나아가 지방 지식인들의 퇴폐적 세태를 풍자적 한탄조와 비판조로 노래한 감정이 진하다. 어쩌면 영동아리랑은 민초들의 한탄과 저항이 들어 있는 아리랑이라 할 수 있다.
일반 백성들은 흉년과 가난으로 경제적으로 참혹한 현실과 더불어 외세에 의해 지역 경제까지 침탈되는 사회상을 가사에 붙여넣어 그 당시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하였다.

◆ 영동아리랑  
영동 땅 흉년은 참혹하여도
떵 덕 쿵 기생집 늘어가고
부자들 유흥만 늘어가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영동의 읍내가 적기는 해도
중국인 잡화상 늘어가고
음식점 술집만 늘어가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영동의 천지엔 돈이 많아도
나날이 이사는 늘어가고
이재민 눈물만 늘어가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흉년에 가난 농민 시각으로
영동 부자들의 흥청망청을 비판
이 아리랑이 불려진 시대에 영동의 민초들은 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어 이재민만 늘어가는 경제적으로 몹시 어렵고 궁핍한 시대에 불려진 민초들의 아리랑이다.
영동아리랑은 영동읍내 부자들은 기생집이다, 술집이다 하며 민초들의 가난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색잡기에 골몰함에 그런 세태를 비판적으로 한탄하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또 일제 초기에 중국에서 상업이나 농업 등으로 한국에 들어온 화교가 영동에서 잡화상을 낸 가사가 들어 있어 그 당시 일본인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상업 분야에서 활동한 일면을 보여 주고 있다. 영동아리랑의 여흥(후렴)구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혼자 후렴으로 부르거나 함께 불러 동질감을 불러일으켜 흥겨움을 배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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