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1년은 100년과도 같은 세월…대우는 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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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1년은 100년과도 같은 세월…대우는 찬밥”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06.0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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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일병 국가에 부름 받고 월남전 참전
바로 옆 전우 포탄 맞고 흔적 없이 사라져
매일 아침·저녁 15알 약 먹어야 살 수 있어
“희생 헛되지 않게 정당한 대우” 울분 토해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옥천군지회 이종선 회장.

“강원도 원통 이기자부대 일병으로 복무 중 맹호부대로 차출됐다. 월남전 참전은 1969년 스물네 살 때 일이다. 1월 초 한파가 가슴까지 얼려버릴 듯했다. 추위보다 더 극심한 공포가 몰려왔으나 거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직 국가의 부름에 따르는 것이 군인의 사명이었다. 국가의 명령에 의해 파월된 월남 땅은 포성소리로 가득했다. 1년간의 주어진 임무기간은 10년처럼 아니 100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순간순간 죽음의 공포를 누르고 오직 견뎌야하는 시간이었다. 개인 방공호안에 포가 떨어져 함께했던 전우가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피투성이로 나뭇가지에 걸쳐 있는 전우의 신체 일부는 슬픔과 두려움을 넘어 삶의 비애 그 자체였다. 그 참혹한 경험을 가슴에 묻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극심한 공포와 슬픔으로 온몸이 떨려왔다. 그 후로도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월남 참전용사들은 슬픔 한 덩이를 가슴에 안고 조심스럽게 견뎌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월남 참전 용사였던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옥천군지회 이종선 회장은 파월 당시 상황을 전하며 수차례 침묵했다.

대한민국은 1964년 비둘기부대를 시작으로 1966년 전투부대 연 병력 32만5853명을 월남전에 투입했다. 5077명 전사, 1만962명 부상. 당시 고엽제에 노출된 장병들은 고엽제로 인한 사망인지도 모른 채 죽음을 맞았다. 생존한 병사들은 고엽제 후유증으로 심각한 고통을 동반한 채 살아가야 했다.

이종선 회장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15개 알약을 복용해야 한다”며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약을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유공자에 대한 국가의 대우가 지금까지 제대로 이뤄진 것이 무엇인지 되물었다. 

이 회장은 “선진국의 보훈정책에 비해 대한민국은 최하위권으로 착잡한 심정”이라며 “현재 옥천군 10만 원, 국가에서 30만 원, 국가유공자 미망인 5만 원 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허술한 지원정책에 한숨만 나온다”고 한탄했다.

또한 “6·25전쟁 당시 참전 용사들이 나라를 지키고,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던 1960년대 국민소득 70불에서 한강의 기적과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건설 등으로 경제 10대 강국으로 국민소득 3만불의 경제 성장에는 농민과 근로자, 목숨 걸고 전쟁터를 누빈 32만 전우들의 희생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슬프도다 슬프도다 국가에 충성한 죄/ 군대 안 간 잘난 놈은 높은 자리 앉아 있고/ 군대 갔다 병신 된 놈 오늘 죽어가는구나” 고엽제전우회 사무실 벽면에 한 맺힌 문구가 선명하게 씌여 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올해는 63회째 현충일과 6·25 전쟁 69주년, 월남파병 55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종선 회장은 “유공자들의 희생정신을 구호로만 기릴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는 정당한 대우를 우선으로 해야 국가를 위해 희생한 그 시간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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