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집 내 집이 어딨슈 급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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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집 내 집이 어딨슈 급한데
  •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19.04.1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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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주 수필가

며칠 전 지인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이었는데 개가 비를 맞으며 앞뒤로 낑낑대며 다녔다. 아니 저 녀석이 비는 오는데 왜 집엔 들어가지 않고 저러나 했다. 계속 그래서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많은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별 신경 안 쓰고 잤다. 새벽에 강아지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별 신경을 안 썼다. 한데 개가 제 집엘 들어가지 않고 계속 주변을 맴돌아 이상한 생각이 들어 개집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웬 낯선 개가 들어앉아 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이 금방 난 새끼가 여러 마리 있는 것이었다. 개는 지인을 보고는 놀라 달아나고 새끼가 꼬물꼬물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싶었다.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다는 말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말이다. 세어보니 다섯 마리나 되었다. 달아난 개가 주변에 왔다 갔다 한다. 자리를 피해 주었다. 가까이 가면 다시 달아나 바로 근처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 갔다 한다. 지인은 부드러운 손짓으로 어미를 불렀다. 그 녀석을 최대한 안심시켰다. 그 뒤로는 경계를 하면서도 어미가 도망가지는 않고 새끼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지인은 졸지에 개가 두 마리나 되고 새끼도 다섯 마리나 되는 대 식구를 거느리게 되었다.

이년 전이다. 지나가던 버스가 서더니 기사가 내려 지인의 집을 향해서 소리를 치고 있었다. 개 좀 달아매놓으라고 화를 내는 것이었다. 아니 무슨 개냐고 지인도 소리를 질렀다. 지인은 그때 개가 없었다. 그런데 두 집밖에 없는 곳 지인의 집 앞에 개가 길바닥에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으니 지인의 갠 줄 알고 기사가 화가 난 것이다. 개는 얼마나 굶었는지 탈진해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길바닥에 늘어진 것이었다.

지인은 모른 체 할 수도 없어 그 개를 거두었다. 개는 꾀죄죄하기가 말할 수도 없었고 몸에는 진드기가 바글바글 붙어 있었다. 동물병원 가서 진드기 약을 치고 불임수술까지 하느라 돈도 만만찮게 들었다. 멋진 개집까지 사다가 정식으로 입주를 시켰다. 날이 갈수록 개는 인물이 나기 시작했다. 흰 색깔의 그 개는 정말로 귀여웠다. 후덕한 지인의 사랑과 충분한 먹이 급여로 윤이 반질반질 나는 귀부인이 되어있었다.

내가 그 집엘 가면 낯설어 짖으면서도 제 주인을 찾아온 손님이란 걸 아는지라 바로 그친다. 나중엔 친해져서 손짓을 하며 다가가면 좋아 죽는다. 털 세도 희고 반질반질한 게 인물이 아주 훤하고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개도 확실히 주인 만나기에 달렸다. 지인이 차를 몰고 집을 나오면 한동안을 뛰어 따라오다가 돌아간단다. 바쁜 지인이 밤늦게 돌아오는 기척이 나면 한참을 집 밖으로 나와 기다리다 차 주위를 뺑뺑 돌며 반가워 죽는단다.

이 개의 집을 웬 낯선 개가 나타나 차고 앉아 새끼까지 낳았으니 참 묘한 일이다. 염치가 없어도 유분수지 남의 집 차고 든 것도 모자라 아랫목에 새끼까지 다섯 마리나 낳고 늘어져 있으니 졸지에 집을 뺏긴 개는 어쩌란 말인가. 제 집을 순순히 내 준 개도 맘씨 곱기가 천사 아닌가. 생김새 못지않게 맘씨까지 곱다.

비 오는 날 산고를 겪는 낯선 개가 황급히 찾아드니 제 집을 순순히 내주고 저는 그 비를 맞으며 집 주위를 맴돌았던 것이다. 텃세를 부렸으면 낯선 개가 감히 그 집에 들 수는 없었을 것이고 아무 곳에나 새끼를 쏟았을 것이다. 난 그 얘기를 듣고 그 개가 더욱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이 새끼 난 개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그 집에 들어 새끼를 난 녀석은 고생을 해서 몰골이 남루하고 수척했다, 그래도 꼬물거리는 새끼를 다섯 마리나 옆에 데리고 또렷한 눈으로 바라보는 게 귀여워 한참을 웃었다. 아마 얼마 안 있어 이놈도 후덕한 지인 손에 몰라보게 변할 것이다. 난 지인에게 말했다. 낯선 개를 두 마리나 그것도 새끼까지 거두었으니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한데 지인은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다. 한 마리 있는 것도 불임수술을 했는데 새끼가 다섯 마리이고 어미까지 관리와 처리가 신경 쓰이는 눈치다.

요즘 뉴스에 사나운 개에게 물리는 사고가 자주 나온다. 집 나온 개는 또 얼마나 많고. 지금 애완견 키우는 게 열병처럼 번져 있다. 반려견이란 이름까지 부여하고 너도 나도 개 입식시키기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다. 좀 의아한 것이 자식도 힘들어하면서 개에게 쏟는 정성은 어찌 그리 지극인가 하는 것이다. 집에 개가 있으면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둘이 사는 경우 같이 며칠 집을 비우려면 애완견 때문에 제약이 많다. 위생문제 등 보통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지인 집에 든 개들이 버림을 받은 것인지 다른 이유로 집을 나오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이런 개들이 얼마나 많은가. 유기견을 보면 이해가 안 된다. 유행만 좇을 것이 아니고 사후관리도 철저히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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