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담(德談)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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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담(德談) 편지
  • 김선기 충남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2.1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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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기 충남대 명예교수

설날 아침 조상께 차례를 드리고 나면 어른께 세배를 드린다. 이 때 어른들이 덕담을 하시며 세배돈을 주신다. 나이에 따라, 입학과 졸업, 입대, 취업, 결혼, 자녀 출산 등이 덕담의 주요 소재가 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설날의 덕담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시점에서 과거와 미래를 집약한 인사말이라 할 수 있다. 새해 첫날의 인사말인 만큼 덕담의 울림은 긴 여운을 남기게 된다. 그래서 덕담에 마음을 쓰게 된다. 대체로 덕담은 칭찬과 격려와 바람으로 이루어진다. 칭찬과 격려로 힘을 얻게 하고, 바람을 통해 인생의 성공과 가문의 번영을 가져오게 되므로, 새해의 덕담은 종교의 기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이든 세대는 자녀들에 대한 칭찬에 인색한 면이 없지 않다. 이 같은 유풍은 자녀를 경망하지 않고 진중하게 키우기 위한 교육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칭찬 일변도의 교육에도 문제가 있지만, 칭찬에 너무 인색한 것은 더욱 문제가 크다. 나무도 칭찬을 받으면 건강하게 자란다는 학설이 사실로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 축 처진 어깨를 다독이며 건넨 격려의 한 마디에 새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설날 덕담에 칭찬과 격려의 말이 들어가는 이유이다.

나는 이번 설에 덕담하는 방식을 새롭게 바꾸어 보기로 하였다. 지금까지 말로 하던 덕담을 짤막한 글로 쓰기로 한 것이다. 글로 쓰려면 먼저 세배할 사람을 하나씩 떠올리며 그에게서 칭찬할 것이 무엇인가, 그가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 기울이는 시간과 노력이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한 두 명이 아니고 여러 사람일 경우, 그 공력은 자연히 몇 배가 들게 된다.

이번에 쓰게 된 덕담 편지는 모두 아홉 장이다.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그리고 다섯 외손주이다. 물론 덕담의 첫째 순번은 아내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설날 아침 부부가 곱게 차려입고 맞절을 하며 덕담을 건네는 장면이 얼마나 멋질까! 그러나 아내와의 덕담은 아쉬움으로 끝나고 말았다.

외손주들에게 쓴 덕담 편지의 일면이다. 외손주는 첫째와 막내가 아들이고, 가운데 셋이 딸이다. 큰 손자가 금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된다. 둘째 손녀는 고등학교, 셋째 손녀는 중학교에 각각 진학했고, 넷째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된다. 요즈음 사람답지 않게 많이 낳아 음식점 같은 데에서 눈길을 끌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하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또 개성이 있고 빛깔이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점이 신기하다.

큰 손자는 몸이 성치 못하다. 성장할수록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점점 외로움을 타고 있다. 그래서 덕담 편지 말미에 “할아버지가 네 곁에 있는 것을 알고 있지?”라고 격려하였다. 둘째는 글짓기에 소질이 있어 수상 경력이 많다. 장녀로서 엄마에게 위로자가 되고 있음을 칭찬하였다. 개성이 강한 셋째는 미술에 특기가 있고, 동그란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 셋째는 친화력이 남다르다. 그리고 막내는 속이 깊다. 뷔페에서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주의 깊게 살폈다가 넌지시 가져다주는 녀석이다. 이러한 기억들을 찾아내어 칭찬하고 격려하며 나의 바람을 엮어 덕담의 글을 만들었다.

세배하고 봉투를 처음 받아 본 아이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돈을 싸고 있는 덕담 편지를 보는 순간 아이들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변했다. 각자 읽고 난 뒤에 한 사람씩 소리 내어 읽도록 했다. 덕담이 개인을 넘어 가정의 행복을 비는 할아버지의 소망임을 알게 하고 싶었다. 싱글벙글, 쑥스런 몸짓, 떨리는 음성 등 나이에 따라 반응이 달랐다. 덕담 편지를 고이 간직하겠다는 손주들의 말에서 이번 이벤트의 보람을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덕담 편지를 통해 자신을 지켜주는 가족이 있다는 믿음을 갖기를 바랐다. 그 믿음의 힘으로 용감하게 성장통을 이겨 나가기를 빈다.

황금 돼지의 해에 새롭게 시작한 덕담 편지인데, 벌써 내년의 설이 기다려진다. 아이들에게 기쁨과 용기와 힘을 주는 덕담 편지를 쓰고 싶다. 그것을 감동적으로 담기 위해 손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한 해를 맞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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