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대스타
상태바
독서와 대스타
  • 정우용 한국도서문화교육원
  • 승인 2018.12.13 15: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우용 한국도서문화교육원

루 웰리스의 원작 ‘벤허/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한 영화 ‘벤허’는 불후의 명화이다.

‘벤허’ 하면 우리는 주연을 맡은 찰턴 헤스턴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호족의 아들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했다가 다시 귀족으로 돌아오기까지의 파란만장하고 극적인 일생을 살다 간 쥬다 벤허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그의 연기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었다. 사람마다 ‘벤허’를 보고 느낀 점이 다를 수도 있고, 가장 인상 깊은 장면 또한 다를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벤허가 예수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 호족 출신 쥬다 벤허는 노예의 행렬 속에 끼여 끌려가고 있었다. 타는 듯한 사막의 길을 갈증에 시달리며 기진맥진해서 걷고 있는 벤허는 입술은 갈라지고 땀과 먼지가 뒤범벅되어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때 벤허의 입에 물바가지를 대어주는 자가 있었다. 호송하는 로마 장교의 비정한 채찍질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예에게 물을 준 자가 바로 예수 그분이었다. 허겁지겁 물을 들이 킨 벤허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는 순간 그 눈빛은 고압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고정되어 움직일 줄 모른다.

경외와 환희에 뒤섞인 벤허의 눈빛과 주눅 든 로마군 장교의 표정만 화면에 꽉 찼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 장면에서 보여준 벤허의 눈빛은, 찰턴 헤스턴이 쌓아 온 연기력이 마침내 폭발하는 것처럼 강렬하다. 그 눈빛은 결코 직업적인 배우가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연출자의 큐 사인 앞에서 예비 된 연기력이 발휘되어 내뿜는 눈빛이 아니라, 절망과 회한 속에서 한 잔의 생명수를 얻어 마신 자의 외경과 기쁨이 교차하는 눈빛이었다. 결코 틀에 박힌 타성적인 연기가 아니었다.

절망과 나락에 빠진 인간이 온몸으로 구원을 희망하고 간구할 때가 아니면 결코 나타날 수 없는 외경스런 눈빛, 무엇이 그 눈빛을 가능하게 했을까?
무엇이 찰턴 헤스턴으로 하여금 살아 있는 쥬다 벤허로 변하게 했을까?
찰턴 헤스턴은 사생활에 있어서도 여느 배우들과는 달리 독특한 면모가 많았다고 한다. 헐리우드의 화려함과 물질주의, 자유분방한 풍조와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가 집안에서 사랑하고 가장 정성들여 갖추어 놓은 것은 서재라고 한다. 그의 서재에는 장식품으로서의 책이 아닌, 읽은 흔적이 뚜렷한 손때 묻은 책들이 꺼내기 쉽게 꽂혀 있다고 한다. 찰턴 헤스턴은 하루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휴식 시간을 서재에 앉아 책을 읽는 것으로 보낸다.

‘벤허’의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먼저 루 웰리스의 원작 소설을 몇 번이나 탐독했다고 한다. 벤허뿐 아니라 다른 영화에 출연할 때도 여느 배우들처럼 주어진 대본만을 읽고 마는 적당주의를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에 출연할 경우에는 반드시 그 원작을 거듭 읽어서 그 작품의 문학성을 완전히 음미했다고 한다. 자신이 맡은 인물의 내면의 움직임과 생각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난 후에야 연기에 임했다는 것이다. 그의 성실성과 진실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벤허에서 그가 한낱 연기자로만 여겨지지 않는 외경과 환희의 눈빛을 표출할 수 있었던 것은 한 인간으로서의 내적인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타성에 젖은 만들어낸 표정의 연기가 있는가하면, 영혼이 우러나오는 표정의 진실이 담긴 연기가 있듯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람이라고 하여 다를 것은 없다. 아무 말 없이 마주 앉아 있어도 영혼이 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도 왠지 공허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다. 꾸밈만으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독서로서 닦고 가꾸는 삶을 살았던 사람, 진솔한 내면이 깃든 연기로 우리에게 참 인간상을 보여주었던 사람, 찰턴 헤스턴은 참다운 삶의 의미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그런 스타 중의 한 사람이다.

시(詩)처럼 아름다운 대사, 완벽한 연출과 연기의 앙상블, 전편을 누비며 극적 효과를 더해주는 웅장하고 감미롭고 황홀한 마크로스 로자의 음악! 한 해를 보내며 <벤허>와 찰턴 헤스턴이 그리워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