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달령 산주막 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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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달령 산주막 옛이야기
  • 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 승인 2020.01.1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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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길손 증약 산주막에서 주모와 하룻밤 풋사랑
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조정이 어지럽고 혼란스럽자, 한양에 살던 한 선비가 봇짐을 싸 바랑을 메고 경상도 친척집으로 낙향키 위해서 충청도를 지나다가 옥천 땅에 들어서는 증약 마달령 고개를 넘게 되었다.
 
△지친 길손 마달령 산주막 주모와
이 선비는 오는 도중에 도적들에게 노잣돈을 모두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성치 못한 몸으로 몇 끼를 굶어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쳐있었다. 날은 저물고 스산한 고갯길을 넘어오는데, 으슥한 산속에 다 쓰러져 가는 산주막이 있어 그곳에 들어갔다.
그 선비는 초라한 행색에 문을 열고 들어서니, 희미한 호롱불이 켜진 방에서 주모가 나오며 “양반댁 자제분이신 것 같으신데, 어서 와요”, “제 행색에 일전 한 푼 없는 가난한 농사꾼입니다. 염치불구하고 술 한 잔만 주시겠습니까? 잠이야 풀 섶에서 자도 춥지는 안겠지만요.....” “한양에 사시나요? 네 머슴살이 오 년 만에 고향 찾아가지요. 머슴치고는 태도가 의젓하시기만 합니다.”
주모가 술잔에 다시 술을 따랐다. “제가 올라올 때 술값을 갚겠습니다. 오늘은 길손들이 없어 쓸쓸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럼 바깥 분은? 혼자 몸입니다. 일하는 할머니만 계시죠.” 호롱불에 매혹적인 주모의 눈길과 마주치자, 선비는 얼굴을 붉히며 급히 술을 들이키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집에서 담은 술입니다.” 식욕 당기는 생선이 안주로 나왔지만, 폐를 끼칠까 봐 술만 연거푸 들이켰다. 주모는 “행색이 초라하시군요? 주제가 말이 아니지요! 시장하시겠어요. 어서 드세요. 네, 염체불구하고 먹겠습니다.” 주막 들창 너머로 은은한 달빛이 흘러들고 사방이 어둠에 깔리며 어지러운 한양 일들이 술잔에 가득 차 어리었다. 

△술김에 하룻밤 풋사랑, 허리띠 풀어주고
잠에서 깬 선비는 이불 섶에서 이상한 감촉을 느끼며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보니, 옆에서 주모가 자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술이 과해 주모의 부축을 받고 이 방으로 들어왔는데~ 그런데 자는 줄 알았던 주모가 누운 채로 고개를 돌리며 “이제 가시렵니까? 그런 걱정 마시고 며칠만 더 계시다가 가십시오!” 주모의 간청에 며칠 더 묵었다. 가기 전에 주모에게 정표로 허리에 맸던 보랏빛 띠를 풀어주고 훗날 꼭 찾을 것을 약속하고 길을 재촉하며 떠났다.

△10년 후 한양 길 재회, 사내아이는 누구?
어느덧 10년 세월이 흐르고 임금의 부름을 받고 햔양으로 올라가는 그는 산주막에서 주모와의 그날을 잊을 수 없었다. 어둠이 내리고 비마저 내리는 증약 산주막에 도착한 그의 가슴이 퍼덕거리며 흥분되었다. 주막 안에는 나그네들 몇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슬며시 주막에 들어서니, 조그만 사내아이가 쪼르르 달려 나와 반기었다. “애야 술 한잔 따라라. 그런데 주모는 어디 계시냐?” 잠시 후 “부르셨습니까?” 여인의 목소리에 그는 정신이 바짝 났다. “이곳에 사신 지 오래 되셨나요?” “네, 한양 가시는 길입니까?, 십 년 전 주모가 아니십니까? 혹시 띠를 주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럼 다시 벼슬 하시러 올라가시는 모양이시군요? 주모가 바뀌었군요?” 그 선비는 그녀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매우 섭섭했다.
주모는 선비를 쳐다보다가 사내아이를 불러 허리띠를 풀으라 했다. “아니, 그럼 그날 밤 인연으로.....” 주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앞날에 서광이 비추기를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자기 아들인 사내아이와 “술 심부름을 한지 오래 되었느냐?, 어렸을 때부터였습니다. 글은 배웠느냐? 고생을 많이 했겠구나? 한양에 가보구 싶으냐? 이름은 무엇이냐?, 성일이입니다” “자주 왔으면 좋겠느냐? 쓸쓸한가 보구나” 선비는 자기와 너무나 닮은 아이를 보며 “ 주모와는 어떻게 되느냐? 저의 어머니이십니다. 뒷곁 샘터에 보라색 띠가 산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는 이 산주막에서의 인연으로 얻은 아들을 데리고 한양으로 올라갔다 한다. 그 선비는 조선 후기 예조참판을 지낸 조문구의 둘째 아들 조수영이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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